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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한 권을 끝까지 읽는 법: 정답 찾기보다 소리 내어 읽고 머무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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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윤

시집을 사 놓고 몇 편 읽다가 책장에 꽂아 둔 경험이 있다면, 그건 시를 못 읽는 사람이라서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학교에서 시를 '풀어야 할 문제'로 처음 만났습니다. 주제, 화자의 정서, 표현법을 찾아 밑줄을 긋던 습관이 남아 있으면, 시집을 펼치는 순간 다시 시험지를 받은 기분이 듭니다. 이 글은 그런 습관에서 벗어나 어른이 즐기면서 시집 한 권을 끝까지 읽는 방법을 다룹니다. 소리 내어 읽기, 마음에 걸리는 한 줄 표시하기, 시집을 하나의 흐름으로 읽기, 모르는 부분 그냥 두기, 그리고 처음 읽기 좋은 시집을 고르는 요령까지 차례로 정리했습니다.

시집이 유독 끝까지 읽기 어려운 이유

소설은 다음 장면이 궁금해서 책장을 넘깁니다. 시집에는 그런 줄거리가 없습니다. 한 편이 끝나면 전혀 다른 장면이 시작되고, 짧은 시 한 편 안에서도 문장이 갑자기 끊기거나 낯선 단어가 튀어나옵니다. 이때 '이 시가 무슨 뜻이지?'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다음 시로 넘어가기가 망설여집니다.

여기서 생각을 조금 바꿔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는 뜻을 전달하는 글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소리와 리듬, 이미지와 여백으로 이루어진 글입니다. 음악을 들을 때 가사의 의미를 전부 분석하지 않아도 좋은 곡은 좋다고 느끼듯, 시도 다 이해하지 못한 채로 좋아할 수 있습니다. 이해는 감상의 조건이 아니라 감상이 쌓인 뒤에 따라오는 결과라고 생각하면 부담이 한결 줄어듭니다.

소리 내어 읽기: 눈보다 입과 귀로 먼저

가장 간단하면서 효과가 큰 방법은 소리 내어 읽는 것입니다. 눈으로만 읽으면 우리는 습관적으로 빠르게 훑고 의미부터 찾습니다. 소리를 내면 속도가 자연스럽게 느려지고, 행이 바뀌는 자리에서 숨이 멈추며, 같은 소리가 반복되는 부분이 귀에 들어옵니다.

소리 내어 읽을 때 도움이 되는 몇 가지 요령이 있습니다.

  • 행갈이에서 아주 짧게 쉬고, 연이 바뀌는 빈 줄에서는 한 호흡 더 길게 쉽니다. 시인이 줄을 바꾼 자리에는 대개 이유가 있습니다.
  • 처음에는 그냥 읽고, 두 번째에는 조금 더 천천히 읽어 봅니다. 두 번째 읽을 때 전혀 다른 단어가 눈에 들어오기도 합니다.
  • 큰 소리가 부담스럽다면 입술만 움직이는 정도로 중얼거려도 충분합니다.
  • 마음에 드는 시는 녹음해서 다시 들어 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내 목소리로 들으면 글로 볼 때와 느낌이 달라집니다.

소리 내어 읽다 보면 '뜻은 잘 모르겠는데 이 부분은 입에 붙는다'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 느낌이 바로 시를 즐기는 첫 단계입니다.

마음에 걸리는 한 줄에 표시하기

시집을 읽을 때 연필 한 자루를 옆에 두면 좋습니다. 다만 학교에서처럼 주제문이나 비유법에 밑줄을 긋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마음에 걸리는 한 줄에 작은 표시를 합니다. 아름다워서든, 이상해서든, 어딘가 불편해서든 이유는 상관없습니다.

이 방법이 좋은 이유는 '이해했는가'라는 기준을 '반응했는가'라는 기준으로 바꿔 주기 때문입니다. 시 한 편을 다 이해하지 못해도 한 줄에 반응했다면 그 시는 이미 나에게 무언가를 남긴 셈입니다. 한 편에 한 줄도 표시하지 못했다면 그것도 괜찮습니다. 모든 시가 모든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은 아니니까요.

표시를 조금 더 활용하고 싶다면 이렇게 해 볼 수 있습니다.

  1. 표시한 줄 옆 여백에 떠오른 단어 하나를 적습니다. 문장으로 쓸 필요는 없습니다.
  2. 시집을 다 읽은 뒤 표시한 줄만 따로 노트에 옮겨 적어 봅니다.
  3. 옮겨 적은 줄들을 이어서 읽어 보면, 내가 어떤 말에 끌리는 사람인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필사를 좋아한다면 시 한 편 전체를 손으로 옮겨 적는 것도 좋습니다. 손으로 쓰면 소리 내어 읽을 때처럼 속도가 느려지고, 눈으로 볼 때 지나쳤던 조사 하나, 쉼표 하나가 새삼스럽게 다가옵니다.

시집 전체를 하나의 흐름으로 읽기

시집은 시를 아무렇게나 모아 놓은 책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시인과 편집자는 어떤 시를 앞에 두고 어떤 시로 끝낼지, 몇 부로 나눌지 고민해서 순서를 정합니다. 그래서 한 편씩 따로 떼어 읽을 때는 잘 보이지 않던 것이 시집 전체를 이어 읽으면 보이기도 합니다.

흐름을 따라 읽을 때 눈여겨볼 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자주 나오는 단어나 사물: 어떤 시집에는 바다가, 어떤 시집에는 창문이나 어머니가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반복되는 것은 그 시집의 중심에 가까울 가능성이 큽니다.
  • 부의 제목과 구성: 1부, 2부로 나뉘어 있다면 각 부의 분위기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봅니다.
  • 시인의 말: 시집 앞이나 뒤에 붙은 짧은 '시인의 말'은 시집 전체를 여는 열쇠처럼 읽힐 때가 있습니다. 처음에 읽어도 좋고, 다 읽은 뒤 확인해도 좋습니다.
  • 첫 시와 마지막 시: 두 편을 나란히 놓고 읽으면 시집이 어디에서 출발해 어디에 도착했는지 어렴풋하게 느껴집니다.

이렇게 읽는 일은 단서를 모아 큰 그림을 맞춰 가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한 편에서 막혔던 이미지가 몇 편 뒤의 시에서 다시 나타나며 실마리가 풀리기도 합니다.

위 영상은 하루의 책상 채널의 '시집을 읽는 방법' 영상으로,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미로 속을 헤매듯 추리하며 시집을 읽는 방식과 시를 읽을 때 도움이 되는 힌트를 다룹니다. 시집을 하나의 흐름으로 읽는 방법과 함께 보면, 단서를 따라가며 읽는다는 감각을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한 번 더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모르는 부분은 그냥 두기

시집을 끝까지 읽는 데 가장 중요한 태도는 어쩌면 이것일지도 모릅니다. 모르는 부분을 모르는 채로 두는 것. 이해되지 않는 시 앞에서 오래 멈추면 독서의 흐름이 끊기고, 결국 책을 덮게 됩니다.

모르는 부분은 실패가 아니라 여백입니다. 오늘 이해되지 않던 시가 몇 달 뒤, 혹은 몇 년 뒤 어떤 일을 겪은 다음에 갑자기 와닿는 일은 흔합니다. 시는 독자의 경험과 만나면서 의미가 생기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다 알 수 없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습니다.

그래도 마음이 쓰인다면 이렇게 해 보세요.

  • 이해되지 않는 시 옆에 물음표만 하나 그려 두고 다음 시로 넘어갑니다.
  • 시집을 다 읽은 뒤 물음표 표시한 시만 골라 다시 읽습니다. 처음보다 훨씬 많은 것이 보일 수 있습니다.
  • 낯선 단어는 사전을 찾아봐도 좋지만, 해설이나 해석 글을 먼저 찾아보는 것은 잠시 미루는 편이 좋습니다. 남의 해석을 먼저 읽으면 내 느낌이 그 해석에 덮여 버리기 쉽습니다.

시집 뒤에 실린 평론가의 해설도 마찬가지입니다. 해설은 훌륭한 안내자이지만, 내가 먼저 한 바퀴 돌아본 뒤에 읽을 때 더 재미있습니다. 내 느낌과 해설이 다르다면 그 차이를 즐기면 됩니다. 시 감상에 하나의 정답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 읽는 사람을 위한 시집 고르는 요령

방법을 알아도 첫 시집을 잘못 고르면 금방 지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다음 기준을 참고해 보세요.

짧고 쉬운 언어로 쓴 시부터

현대시 가운데에는 실험적이고 난해한 작품도 많지만, 일상의 언어로 짧게 쓴 시도 많습니다. 처음에는 한 편이 한 페이지를 넘지 않는 짧은 시가 많은 시집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나태주 시인은 「풀꽃」처럼 짧고 쉬운 말로 쓴 시로 널리 알려져 있어, 시를 오랜만에 읽는 사람이 부담 없이 시작하기에 알맞습니다.

서점에서 아무 쪽이나 펼쳐 보기

시집은 직접 펼쳐 보고 고르기 좋은 책입니다.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아무 쪽이나 펼쳐 시 한두 편을 읽어 보고, 한 줄이라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으면 그 시집과 인연이 있다고 생각해도 됩니다. 반대로 서너 편을 읽어도 아무 느낌이 없다면 다른 시집을 펼쳐 보세요.

선집과 개인 시집을 함께 활용하기

여러 시인의 시를 모은 선집은 다양한 목소리를 맛보기에 좋습니다. 선집에서 마음에 드는 시인을 발견하면, 그 시인의 개인 시집으로 넘어가 한 권 전체를 흐름으로 읽어 보는 순서를 추천합니다.

얇은 시집으로 '완독'의 경험 만들기

처음에는 분량이 적은 시집을 골라 끝까지 읽는 경험을 먼저 만들어 보세요.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표시한 줄들이 남고, 그 줄들이 다음 시집을 고르는 기준이 되어 줍니다.

하루 한 편, 천천히

시집은 하루에 다 읽지 않아도 됩니다. 자기 전에 한 편, 출근길에 한 편처럼 짧게 나눠 읽어도 시집 한 권은 생각보다 금방 끝납니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머무르는 시간입니다. 소리 내어 읽고, 걸리는 한 줄에 표시하고, 모르는 것은 그냥 두고 다음 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시에 닿아 있을 것입니다. 오늘 책장에 꽂혀 있던 시집을 꺼내 아무 쪽이나 펼치고, 첫 시를 작은 소리로 읽어 보는 것부터 시작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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